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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2021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걸작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과 체호프의 희곡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상실, 소통, 그리고 애도의 과정을 3시간에 걸쳐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1. 소통의 본질을 해체하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우리가 흔히 소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같은 언어를 쓰고, 감정을 표현하며, 목소리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드라이브 마이카》는 연극과 대본 리딩이라는 독창적인 장치를 통해 그 익숙한 소통의 개념을 하나씩 해체해 나갑니다.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주인공 가후쿠가 연출하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극단에는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그리고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하나의 연극을 만들어 나갑니다. 여기서 영화는 첫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소통은 가능한가.
두 번째 해체는 연기의 방식에서 일어납니다. 가후쿠는 배우들에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사를 기계적으로 읽어 내려가도록 지시합니다. 감정을 담아야 할 연기에서 감정을 걷어내는 셈입니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실제로 사용하는 연출 방식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한 뒤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싣는 순간, 기적과 같은 순수한 연기의 스파크가 발생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방식입니다.
세 번째 해체는 음성의 소거입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는 목소리 없이 오직 손짓과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소통의 도구들, 즉 공통된 언어, 감정적 표현,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씩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적인 요소들이 사라질수록 인물들은 더 깊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소통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내가 고집하던 방식 외에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보여줍니다. 이것이 《드라이브 마이카》가 단순한 멜로드라마나 예술 영화를 넘어서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2. 담배 연기와 상실의 애도, 두 사람이 공유한 슬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은 단순한 시각적 묘사가 아닙니다. 그 연기는 죽은 이를 위한 장례의 연기이자, 상실을 함께 애도하는 의식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 오토가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슬픔 속에 멈춰 있는 인물입니다. 오토는 남편과의 관계 후 떠오르는 이야기 아이디어를 들려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인물로,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출연 배우와 반복적으로 불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가후쿠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직접 묻는 것이 두려워 침묵을 선택했고, 그 질문들은 마음속 깊이 묻혀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오토가 그날 밤 '할 얘기가 있다'라고 했을 때 귀가를 미룬 가후쿠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갔다면 아내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가후쿠가 아내의 외도 상대였던 젊은 배우 타카츠키를 오디션에 참여시키고 그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마치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제야 진짜 상(喪)을 치르는 과정에 진입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운전수 미사키 역시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녀는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왔지만, 결국 상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서로 다른 상처를 품은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휴식의 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상실을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함께 애도하는 시간입니다. 죽은 이를 향해 향을 피우는 의식처럼, 두 사람의 침묵 속에는 애도의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북해도 장면은 그 모든 애도의 여정이 도달하는 종착점처럼 느껴집니다.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풍경은 화장 후 남겨지는 하얀 유골을 연상시킵니다. 불에 타고 남은 재처럼, 두 사람이 품고 있던 죄책감과 슬픔도 긴 시간을 거쳐 모두 태워낸 것은 아닐까요. 상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3.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과 바냐 아저씨가 교차하는 서사 구조
《드라이브 마이카》의 서사적 깊이는 단층적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에서 핵심 모티프를 가져옵니다. 아내가 남편과의 관계 후 떠오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단편 '세헤라자드'에서, 남편이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는 장면은 또 다른 단편에서 차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의 단순한 영상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원작에 없는 결정적인 요소들이 영화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바로 연극 연출, 홋카이도까지의 여정, 그리고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삽입입니다. 주인공 가후쿠가 연극 연출을 맡고, 아내와 관계를 맺었던 젊은 배우 타카츠키가 그 연극에 참여하면서, 《바냐 아저씨》의 서사는 영화의 메인 서사와 정교하게 엮입니다. 인물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망이 형성되고,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경청하는 형식으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특히 아내 오토가 타카츠키에게 남편에게는 들려주지 않았던 미완의 이야기, 즉 여고생이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빈집에 몰래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준다는 설정은 단순한 불륜 서사를 넘어섭니다. 이 이야기는 아내 자신의 '몰래 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녀가 죽기 전 가후쿠에게 하려 했던 고백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그 고백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원히 단절됩니다.
부부 사이의 비극적인 아이의 죽음 이후 오토가 아이를 잉태하는 대신 이야기를 잉태하게 된다는 설정 역시 예술의 창작과 상실의 모티프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야기를 통해 상실감을 치유하려는 시도이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 전달하려는 인간적 욕망의 표현입니다.
영화의 40분에 달하는 긴 프롤로그는 그 자체로 본편 전체에 대한 질문이며, 본편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야기들이 서로 중첩되고, 밀어내고, 섞이면서 궁극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그 과정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영화 전체를 통해 증명합니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상실을 다루는 동시에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언어와 감정과 목소리를 걷어낸 자리에서 더 깊은 이해가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 영화는 마지막에 조용히 말합니다. "괜찮아.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